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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흔적

아내를 만나다

by prelude618 2024. 10. 29.

후배가 나눈 솔직한 연애담을 보다가 옛생각이 나서 몇자 끄적여봅니다.
아내를 만나서 이 사람이랑 꼭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내의 앞모습이 아닌 뒷모습에 반해서였습니다. 
물론, 처음볼때부터 호감은 들었지만,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아내의 뒷모습때문이었습니다. 


어려운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의 딸로 아내는 직장을 다니면서 받은 돈을 거의 헌금과 생활비로 냈습니다.
데이트를 하러 나오는 아내의 옷차림은 항상 다소 허름했습니다. 
몇번을 만나도 항상 그랬습니다. 
나도 사실 패션감각 떨어지고 좋은 옷도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아내의 모습은 그런 나에게도 결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섯번쯤 만났을 때였을까... 아내는 잠깐 얘기를 나누다가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내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역시나 낡은 외투와 낡은 부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 넘어로 학생처럼 살짝 상기된 화장기없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곁에 내가 있어야한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아내를 만나러 가는 순간 드는 마음은 다른 만남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없는 기대, 벅차오르는 감정, 흥분된 마음대신에, 마치 따뜻한 봄날, 바람이 시원한 가을날 나무그늘 벤치에서, 아내의 무릎을 베고 잠시 낮잠을 자러가는 것과 같은 평안이 몰려왔습니다. 밀린 업무와 수많은 관계로부터 오는 모든 스트레스를 잊게 하는 잔잔한 물결이 내 마음을 가득히 채웠습니다. 


어떤 감정이 진짜 사랑일까? 물론 섣불리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어떤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아내는 결혼을 하고서도, 대출을 얻지 말자고, 10평대의 25년된 아파트를 선택했습니다. 큰아이를 임신하고도 4층을 엘리베이터없이 오르내렸습니다. 지금도 백화점을 데려가도 좋은 옷을 사지 않습니다. 다만, 나보고 한사코 좋은 옷을 사서 입으라고 얘기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궁상에 지나지않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게 맞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도 그런 사람인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그 한사람, 그렇게 기도해왔던 사람이었습니다. 
결혼을 거의 반쯤 포기한 서른일곱이란 나이에 비로소 만났지만, 그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 다음으로 내게 소중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순수하게 사랑하고, 실패하고, 아파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나는 그 길을 버리지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항상 당하는 것 같고, 손해보는 것 같지만, 결국 언젠가 자신보다 더 바보를 만나게 된다고, 그 바보를 만나기 위해서 연단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개인의 경험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길외에 어떤 다른 길이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순수함과 진실함을 무엇과도 바꾸지 못하는 피를 가졌다면, 어떠한 변신도 언젠가는 벗어야할 옷이 될 것이고, 지워야할 화장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길밖에는 없는게 아닐까요? 
다만, 조금 더 기뻐하고, 조금 더 기도하고, 조금 더 감사하자고, 우리 같이 그 길을 포기하지 말자고 말해주고싶습니다.


Written on Oct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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