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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흔적

큰매형을 보내며

by prelude618 2024. 4. 18.
제 지인들은 아시겠지만, 큰누나와 저는 17살차이가 납니다. 큰누나와 큰매형은 9살차이가 나고요. 저는 재수를 시작하면서, 당시 서울역에 있던 종로학원에 다니기 위해 큰누나집에 갔습니다. 운정이라고 지금은 신도시가 들어선 지역이지만, 93년도 당시는 말그대로 시골깡촌이었습니다.

운정이 수원보다 결코 서울역에서 가까웠던 곳은 아니었지만, 저를 막내동생이상으로 어릴 때부터 극진히 사랑했던 큰누나와 맘좋은 큰매형의 품으로 저는 재수를 시작하면서 떠났습니다. 저의 집 형편과 환경이 여러가지로 어려웠기도 했고요.

운정집은 말그대로 깡촌 시골집이었습니다. 상수도도 제대로 공급이 되지않아 물에는 알수 없는 부유물이 떠다녔고, 매형과 누나는 본인들은 그 물을 마시기도 하면서, 처남을 위해서는 먼곳에서 약수를 길러오는 일을 잊지않았습니다. 매형은 매일 새벽같이 오토바이에 태워서 저를 운정역까지 실어주고, 다시 밤이되면 저를 데리러 역으로 나왔습니다. 때로는 누나가 직장생활때문에 피곤해서 아침에 못일어날때면 매형은 저를 위해 맛있는 볶음밥도 만들어서 차려주시곤 했죠.

재수하면서도 솔직히 공부를 열심히 안했습니다. 처음 몇달간은 열심히 하다가 성적이 어느정도 나오니 자만한 탓에, 학원에 가지도않고 매일 빈둥거리며 TV만 보며 지낸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매형과 누나는 저에게 단한마디 잔소리도 하지 않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한심했을까 싶습니다. 누나가 나중에 얘기해줬지만, 매형이 속으로는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군대에서 가끔 외박이나 휴가나왔을 때도 가끔 놀다가 복귀시간이 늦어질 때면, 저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고양에서 덕정부대까지 그 먼길을 태워주셨습니다. 오토바이로 갔기에 무사히 늦지않고 복귀할 수 있었죠. 사람은 자신이 가장 외롭고 어려울 때 지지해준 사람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내 인생의 스승이 된 겸손하고 따뜻한 분들을 언급하면서, 큰매형을 언급하지 못했는데, 큰매형이야 말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처남의 가방이 뜯어졌다고, 손수 실로 꿰매주시던 그런 분이었습니다.

제가 수원으로 직장을 옮기고, 누나집을 떠나 얼마있지않아, 매형은 신부전증에 걸리셔서 투석을 하게되셨습니다.
그 건강하고 항상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던 분이 참으로 약해지셨습니다. 항상 성인과 같은 사람이었는데, 때로는 아이처럼 투덜거리기도 하시고, 걷기조차 힘드신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매형을 모시고, 마지막으로 몇년전 동해와 제주도 여행을 함께 다녀왔는데, 더이상 여행이 어려워 보이는 모습에 참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매형을 항상 잘 챙기고, 여행가서도 항상 신경써주는 제 아내를 매형은 참 예뻐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고통의 삶을 이어가던 매형이, 교통사고를 당하시고 뇌출혈이 생기셔서 두달여간을 의식없이 누워계셨습니다. 그리고, 12일 세상에서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예수님만 바라보며 사시던 매형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또 선한 사람들이 그렇게 이 세상에서 떠나갈 때...
어쩌면 부귀와 안락보다는 고통과 어려움이 많았던 삶을 돌아볼 때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회의어린 심정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매형은 벽제승화원에서 화장되고, 금산 선산에 봉분없이, 평평한 땅에 구름모양의 작은 비석아래 묻히셨습니다. 마지막 하관예배를 드리며 불렀던 찬양이 계속 머리속에 남습니다.

모든 것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찬양속에서 영원히 천국에 거하실 사랑하는 큰매형에 대한 확신이 담겨집니다.
매형... 죄송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고통없는 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합니다.

"나 가난복지 귀한성에 들어가려고 내 중한 짐을 벗어버렸네
죄중에 다시 방황할일 전혀 없으니 저 생명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찬송가 246장>

 

 

- Apr 16,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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